[이코노미한국]왜 자꾸 괴벨스에게 시선이 갈까?

이코노미한국 | 기사입력 2017/05/05 [16:31]

[이코노미한국]왜 자꾸 괴벨스에게 시선이 갈까?

이코노미한국 | 입력 : 2017/05/05 [16:31]

/조준현기자 jhcho@hankooke.co.kr

“지배는 항상 소수에 의해 이루어진다. 국민들은 용감한 자들의 공개적인 독재 치하에서 살 것인지 겁쟁이들의 위선적인 민주주의 치하에서 죽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만 갖고 있다.”

히틀러의 오른팔이자 나치 독일 선전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 사진)가 쓴 반자전적 소설 ‘미하일’에 나오는 문구다. 그가 대중매체를 이용해 반(反)유대 감정을 부추기고 독일인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인 건 알려진 대로다.

본격적인 나치스 활동을 시작하기 전인 1923년 26세의 나이로 이 소설을 썼던 괴벨스는 순수한 듯 포장된 주인공 미하엘의 입을 통해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대인을 보면 내 몸은 곧바로 구역질이라는 신체 반응을 보인다. 나는 유대인의 얼굴만 봐도 토할 것 같다. (…) 유대인은 병든 우리 독일인의 몸에 들러붙어 있는 고름덩어리 같은 존재다."

실제 괴벨스는 이 작품을 쓴 뒤 10년이 지나 히틀러의 선전장관에 임명됐고, 히틀러의 온갖 구상은 그를 거쳐 실행됐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괴벨스는 히틀러가 자살한 바로 다음 날인 1945년 5월 1일 베를린 총리 관저에서 아내, 6명의 자녀와 동반 자살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미하엘’을 읽다 보면 괴벨스 개인적으로나 세계 역사에서나 비극의 씨앗이 처음에 어떻게 싹트는지 알게 돼 섬뜩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고통스런 기억은 현장에 남는다. 김근태가 전기고문을 당하고 박종철이 물고문을 당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이곳 5층에는 다른 층에 비해 훨씬 좁은 19개의 창문이 있다. 팔 하나를 겨우 내밀 정도인 이 창문들은 ‘고문실’이라는 용도를 은폐하고 투신자살을 방지하는 동시에 건물 입면 비례를 감안한 미적 측면까지 고려한 설계의 결과물이다. 고문실 출입문들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엇갈리게 배치돼 있어 어쩌다 문이 열려도 반대쪽을 들여다볼 수 없다. 방문은 안에서는 열 수 없고 밖에서만 열어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고문실 벽에는 소리를 흡수하는 타공판이 부착돼 있는데, 목재를 사용한 탓에 고주파수의 비명소리가 벽을 타고 옆방으로 전달된다. 대공분실에 끌려온 자는 눈이 가려진 채, 자기가 가는 곳이 몇 층인지 알 수 없는 나선형 계단을 통해, 암흑 속에서 울리는 발소리와 욕설을 들으며, 엄청난 공포감 속에서 고문실로 들어선다.

건축가 김명식은 책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에서 이 건물을 “현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악의적인 공간을 품고 있는 곳”이라며 건축가의 윤리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토록 용의주도한 설계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정권 비판적인 영화·연극 등에 대해 "너무 좌편향 돼 있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진행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의혹에 관해 이같이 증언했다. 박 전 수석은 2013년 8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인물이다.

특히 박 전 수석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고 블랙리스트 작성 업무에 일정 부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수석은 이날 "김 전 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 때마다 '나라가 많이 좌편향 돼 있다'는 언급을 자주했다"며 "문화예술계 일부 단체에서 만든 영화 또는 연극에서 대통령을 조롱하고 정부를 비방하는 내용 등이 나온 것에 대해 개탄을 하고 그런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논의가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같은 증언을 뒷받침 하는 증거로 박 전 수석이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 작성한 업무 수첩을 공개했다. 자필로 기록된 28권 분량의 업무수첩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당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종북세력 문화계 15년간 장악. 재벌들도 줄 서. 정권 초 사정 서둘러야. 비정상의 정상화 국정과제'라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9월9일 수첩에는 '천안함(영화) 메가박스 상영문제. 종북세력 지원의도. 제작자 펀드 제공자 용서 안돼. 국립극단 개구리 상영 용서 안돼. 각 분야의 종북·친북 척결 나서야. 강한 적개심 갖고 대처. 비정상의 정상화 일환' 등의 기록도 있었다.

박 전 수석은 "김기춘 전 실장이 회의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기록이 그렇게 돼 있다"고 답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과 비이성이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비이성은 문명인이 야만인이 되는 지점의 울타리 너머라고 본 것이다. 머리가 좋았던 김기춘 전 실장이 살아왔던 경로를 반추하며 괴벨스와 김수근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주지하다시피 근대적 인권 개념의 핵심인 보편성은 해부학의 발달에서 기인했다. 인간의 몸은 같다. 모든 이의 피는 붉으며 눈물에는 색깔이 없다.

여기서 드는 또하나의 의문. 김기춘 전 실장의 피는 어떤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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