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한국]‘믿음이 산을 옮길 때’-신해철의 또다른 유산

이코노미한국 | 기사입력 2018/01/31 [12:55]

[이코노미한국]‘믿음이 산을 옮길 때’-신해철의 또다른 유산

이코노미한국 | 입력 : 2018/01/31 [12:55]
/이지형기자? jhlee@hankooke.co.kr

프랑시스 알리스는 벨기에 출신으로 남미에서 주로 활동하는 행위예술가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업이 2002년에 벌였던 '믿음이 산을 옮길 때' (When Faith Moves Mountainsㆍ사진)다. 이 퍼포먼스는 알리스가 페루 리마의 외곽에 있는 500미터 높이 모래언덕에서 500여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하루 동안 벌인 프로젝트다.

알리스는 리마의 대학가를 돌며 자원봉사자 500명을 모집하고, 그들을 작은 동산만 한 모래언덕 아래로 불러 모아 삽을 한 자루씩 나눠 줬다. 그들의 임무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언덕 기슭에서부터 삽질을 하면서 한 발자국씩 정상을 향해 모래를 퍼 올리는 일이었다.

산의 지리적 위치는 실제로 변경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뙤약볕 아래 삽을 들고 줄지어 선 젊은이들은 흙을 조금씩 퍼내며 전진해, 결국 언덕의 위치를 10센티미터 정도 이동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 무모한 '삽질'(우리말에 ‘삽질한다’는 말을 상기해보라)은, 신념(faith) 앞에 불가능은 없다는 오래된 잠언을 예술적 실천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우공이 후손을 위해 산을 옮기고자 결심하자, 그 정성에 놀란 신(神)이 밤새 산을 옮겨주었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떠올리는 대목이다.

그러나 리마의 판자촌이 내려다뵈는 황량한 모래산을 한 뼘이나마 움직인 것은 신의 기적이 아니라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의 실질적인 행동이었다. 대부분 대학생이었던 자원봉사자들은 이토록 바보스러운 일을 끝마친 후, 서로를 믿는다면 변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물론 결국 바람 한번 불고 나면 되돌아갈, 하나 마나 한 일을 피땀 흘려 이룬 격이겠지만 알리스의 작품은 10㎝ 물러난 모래산이 아니라, 바로 그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었던 것이다.

가수 고(故) 신해철 사망 사건을 초래했던 S병원 전 원장 강모(48)씨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앞서 강모 씨는 1심 선고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신해철의 유족 측은 반발해 항소를 했었다.

서울고법 형사5부(윤준 부장판사)는 30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강씨에게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실형 선고로 인해 강씨가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도 발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수술 후 계속 통증을 호소했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유족에게 사과하기에 앞서 유족들 동의도 받지 않고 개인 의료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노출하는 등 추가 범행까지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또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기까지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고인 스스로 유족들에게 회복 조치를 취한 바 없다"며 "그 책임 정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주지하디시피 강씨는 2014년 10월 17일 송파구 S병원 원장일 당시 신씨에게 복강경을 이용한 위장관유착박리술과 위 축소 수술을 받았고 수술을 받은 후 복막염·패혈증 등 이상 징후를 보이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다가, 같은 달 22일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으나 27일 오후 8시 19분께 숨졌다.

특히 이 같은 2심 선고가 나오기 직전 의사 강 씨에게 수술을 받았다가 숨진 환자가 신해철 말고도 4명이나 더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충격을 줬다. 신해철 사망사건 이후 새로 차린 병원에서는 2015년 7월부터 다섯 달 동안 21명이 강 씨에게 위 절제술을 받았고, 의사 강 씨는 최근까지도 지방의 한 병원에서 여전히 외과수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해철이 억울하게 숨졌다고 유족과 팬들이 하소연했지만 의사 강씨는 가벼운 형을 받았고 현행 의료법의 허점을 피해다니며 불안한 의료행위를 지속해왔던 것이다.

'믿음이 산을 옮길 때'가 실행됐을 당시 이런 질문들이 나왔다. 삽질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과연 신념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누구의 신념이었을까.

전략과 의지, 동원할 자본과 인력이 있다면 현대사회에서 산을 옮기는 것 쯤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여 삽질만으로 산을 움직이는 일, 즉 '믿음' ‘신뢰’를 공유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2심 법원 판결로 가족들의, 팬들의, 우리사회의 믿음과 신념이 다시 산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고 신해철의 미망인 윤원희씨는 "(남편의 죽음이) 헛된 희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런 반복된 실수를 또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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