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한국]북미정상회담, 그 유예된 시간을 기념하며

이코노미한국 | 기사입력 2018/05/25 [15:03]

[이코노미한국]북미정상회담, 그 유예된 시간을 기념하며

이코노미한국 | 입력 : 2018/05/25 [15:03]

/정승량 선임기자 code1@ hankooke.com

“나는 언제나 소통은 춤과 같다고 생각했다.”

북한과 미국이 아슬아슬하게 폭언으로 상대방을 몰아부치던 그때 눈길이 갔던 오프라 윈프리의 말이다. 그녀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면 상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댄스플로어에서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두 사람이 함께 엉켜들 수 있다.”

북미회담이 무산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금융당국도 시장 모니터링을 격상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무산에도 밤사이 금융시장은 크게 동요하지는 않은 것은 다행이다.

24일(현지시간)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시장에서 원/달러 1개월물은 1,080.7원에 최종 호가됐다. 스와프포인트(-1.05원)를 고려하면 전 거래일 서울 외환시장 현물환 종가(1,079.6원)보다 2.15원 오른 셈이다.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한국의 외국환평형기금(외평채·5년 만기 기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47bp(1bp=0.01%포인트)로, 전 거래일보다 3bp 상승하는 데 그쳤다.

북미 정상회담 무산이 북미 양측의 신경전 결과일 뿐 정상회담 가능성이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라고 금융시장이 판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만 국내 증시나 외환시장 상황은 이와 다를 수 있으므로 외국인 자금 유출 등 시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쓴 공개서한에서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1996년 황장엽의 탈북 이후 최고위급 탈북으로 알려진 태영호 전 주영북한대사관 공사는 “북한 외교가 강한 이유는 ‘벼랑 끝 외교’란 표현이 상징하듯이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외교이기 때문에 절박하다”고 풀이했다.

북한은 절박하다. 신격화는커녕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마저 부족한 김정은이 결국 흑묘백묘론을 내세운 ‘등소평의 길’을 선택한 것은 그런 절박함의 발로일지 모른다.

모사(謀士) 모개는 패왕을 꿈꾸는 조조에게 "정의를 세우면 정당한 명분이 생긴다"면서도 "실력이 있어야 하며 실력 중엔 경제적 실력이 으뜸"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선택한 등소평의 길은 결국 조조의 길인지도 모른다.

기원전 110년 경 활약한 사마천은 사기에서 역사를 움직여 가는 주체를 개개의 인간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극명하게 부각시켰다.

사기의 절반이 넘는 분량이 할애된 열전에는 사상가와 웅변가, 위인, 호걸을 비롯하여 문인이 있는가 하면 장군과 병법가가 있고, 유학자가 있는가 하면 자객이나 협객이 있고, 절의를 숭상했던 애국지사가 있는가 하면 간신이나 돈을 벌어 치부한 부자가 있다.

특히 유교사상으로 치부를 부끄러워하던 당시 시대에 맞지 않게 돈을 벌어 치부한 자들의 전기를 다룬 화식열전은 동양에서 자본주의를 다룬 초기의 글로 사마천의 탁견이 돋보인다는 평가가 있다.

인간이 존재하는 본능적인 욕구는 그 뒤 2,000년 안팎이 지난 2018년이나 달라진게 없지 않은가.

진실은 언제나 매우 분열된 형태로 존재한다. 서로 다툰 두 사람의 말을 다 들어보지 않고서는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 회의적이던 플라톤은, 환자를 치료할 때 전문 의사에게 맡겨야지 다수결로 치료법을 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총리이던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도 중요해서 장군들에게만 맡길 수가 없다”고 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기 때문에 군사전문가의 판단에만 의지할 수 없단 얘기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적 식견에 가려져 되레 전체를 못 볼 수 있다.

‘잔치가 끝났다’는 최영미의 서른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온다는 최승자의 서른도 다르지 않은가.

서로 논쟁하는 세상의 수많은 관점들을 모두 수렴하겠다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큰 욕심을 내지 않고서는, 새로운 전망이나 시야를 만들어낼 수 없다.

긴 시각으로 보면 우리 인류는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면서 조금씩 전진해왔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처음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와 아픔을 줘 거의 죽음 가까이 몰아가지만 결국은 전보다 더 좋은 상태가 되게끔 한다는 것이다.

‘북한 리스크가 제거된 경제문제’는 남한에서도 최대의 정책사항이다.

후대 역사학자들이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북미회담에서도 통용됐다고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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